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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여름휴가

2020.07.31 19:48 395 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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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청구작업이 끝났다. 8월 기본자료 업데이트도 마쳤다.

내일 오전 시설에 진료 갔다오면 바야흐로 여름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3월 부터 청구작업을 마치고 나면 허무해진다. 최근에 그랬듯이 이번 달도 병원지촐이 수입보다 많다.

오래 전부터 돈에 집착하지 않은 탓에 금전적인 면에는 무디기만 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지출을 감당하는 것이 두렵기는 하다.

낮에 지갑을 탈탈 털어 직원들에게 몇 푼을 쥐어줬다. 휴가 때 교통비나 하라고.

휴가라 해봐야 갈 데도 없다. 이번 휴가는 출사도 맘이 내키지 않는다.

어렵사리 마련한 지구의를 사용한 은하수라도 찍어 봐야 하는데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

휴가 뿐 아니라 명절 같이 며칠 혼자 지내는 날이 싫다.

이럴 때면 혼자라는 사실이 실감이 나서 견디기가 힘든다.

보통은 밥도 잘 먹지 않고 종일 누워서 잠이나 자는 것이 지난 날의 행보였던 건 사실이다.

이번 휴가는 보람차게 보내려던 계획이 환자와의 마찰로 무산되어 버렸다.

정말이지 모든 일에 손을 놓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다.

따지고 보면 나한테는 나를 붙드는 세상의 미련이 없긴 하다.

그런데도 망설이는 이유가 있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그렇다.

죽을만치 힘든 지난 17년 동안에도 잘 버텨왔는데 이제는 숨 돌릴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지금 또 힘들다고 생각하는건 사치가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를 악물고 지내던 그 시절이 더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그 때는 이런저런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에 행복이니 불행이니 그런걸 따지지도 않았고 그저 하루하루 보낼 수 잇었던 것에 감사하면서 지냈기 때문이다.

나이가 더 들어서일까. 왜 지금에 와서야 한없이 미천하고 약해져 있다는 생각이 드는걸까.

그 어려울 때도 남을 위해 살아왔던 내가 지금에 와서 이러는 자신이 미워진다.

어쩌면 그래서 항상 남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 모른다. 과거에도 빚을 갚을 때까지만 버티자라는 그 맘이 나를 지탱시켜줬으니까. 얼만전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상 모든 빚을 청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 나약해 졌던걸까.

그래서 다시 빚을 만들었다.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을.

세상이 나를 가만이 두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스스로 행복해 하는 것을 하늘은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너는 힘들어야 한다. 너는 계속 괴로워해야 한다. 하늘이 나에게 하는 말이다.

며칠 쉬는 동안 생각을 해 봐야겠다.

어쨌던 오늘 하루도 지나간다. 후덜거리는 다리를 끌고 집에 가는 일만 남았다.

책상 앞에 있는 구피에게 밥이나 주고 가야겠다. 내가 없는 나흘 동안 니네들도 죽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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