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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아이스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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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6학년이 되면서 중학교 입시제도가 없어진다는 말을 듣고 친구 부모님이 하던 제과점을 찾았다.

아이스케키를 공급 받아 팔고 그 대금을 입금시켜주는 요즘 말하는 알바를 한 것이다.

받아오는 가격이 개당 2원50전, 10원에 4개를 받아와 개당 10원에 팔았다.

아이스케키통 두껑에 숫자와 꽝이라는 글자를 새긴 판을 올려놓고 돌려서 침으로 꼿아 보너스를 주는 복불복 장사를 했다.

거제동에서 수영해수욕장까지 걸어 가면서 장사를 했는데 대부분 도착할 무렵이면 절반은 팔렸다.

날씨가 너무 더운 날에는 갈증 떄문에 가는 도중 서너개를 먹고, 햇살이 너무 뜨거운 날에는 잘반이 남은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사분지일만 팔아도 본전은 됐다.

왕복 6~7시간이 걸리는 여정.

그 때는 그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하던 이 장사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막을 내렸다.

중학교 방학시절에는 이러카에 수박과 참외를 싣고 다녔다.

과일장사는 아이스케키 보다 이뉸이 훨씬 좋았다.

문제는 이러카를 끌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다는거다.

그래도 2~3학년 때 들고 다니던 구두통 보다는 낫다.

부모님 지인들의 눈을 피해 남의 동네에서 구두를 닦았는데 그 쪽 형님들에게 구두통 뺏기고 진득하게 맞았던 기억도 새롭다.

왜 그렇게 고생을 사서 했는지 모르겠다.

부모님들 돈이 아닌 내가 번 돈으로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동네 중3아이를 상대로 과외를 했고 본과 1학년 때는 입주과외도 했었다.

예과 지도교수님 조카 주2일 4시간 과외로 40만원을 받았는데 당시 지도교수님 월급이 45만원이었다.

나 좋다고 쫒아다니던 여학생이 자기 동생 과외를 부탁하면서 동네 아이들 몇 명을 끼워 같이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를 보고 싶어하던 마음을 짐작은 했지만 모른 척 지냈다.

과외수입이 월 80만원이 넘었다.

개원은 달랑 12만원으로 시작했다.

지금도 통장에서 내가 빼 가기만을 기다리는 돈은 없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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