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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무엇으로 사는가(11)-어린시절의 친구

2003.09.29 15:13 1,349 1 1 0

본문

가을이 되니 문득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인 그는 무척이나 짖궂은 아이였다.
논두렁 위에 지어진 학교인지라 학교 주위에 있는 두렁에는 봄이 지나면서 언제나 뱁이 득실거리고 있었는데 이 뱀을 어찌나 잘 잡던지 우리는 그를 땅군이라 불렀다.

일요일이면 친구들이랑 학교 뒤에 있는 산에 자주 올라갔다.
산에는 커다란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는 그 산을 세미산이라 불렀다. 세미산의 유래나 왜 그렇게 불려졌는지는 모른다. 금정산의 분지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자세한 건 지금도 모른다.
이 산을 타는 날이면 도토리를 한 자루씩 담아 오는 일도 많았고 동굴 옆에는 동굴 입구와 똑 같은 모양의 집채만한 바위가 마치 문을 열어놓은 것과 같이 버티고 서 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촉촉한 물기 때문에 더운 여름철에는 피서로는 그만이었다. 이 굴의 이름은 베틀굴이라 했다. 과거에 여기서 베틀로 베를 짰다고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일제시대에는 이 동굴 안에 보물을 숨겨뒀다는 말을 들은 우리는 동굴에 갈 때 마다 구석구석 뒤지고 다니기도 했다. 안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져 급기야는 기어서 가야될 정도로 낮아지는데 어두운 그 동굴을 끝까지 가보겠다는 야망은 후래쉬를 들고가도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어두운 굴을 탐험하는 것이 어린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이 산을 타고 올라가던 중 사고가 났다.
산등성이를 올라가던 우리는 작은 나무가지를 칭칭 감고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를 만났다.
평소 뱀 잡는 것을 즐기던 친구가 이를 그냥 지나칠리가 만무하다.
그냥 가자는 우리를 뿌리치고 옆에 있던 조그만 나무가지를 줏어들고 뱀을 놀리기 시작했다. 친구 말로는 저 넘을 끝까지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놀리기를 한참 후에 드디어 뱀은 가지를 감고 있던 몸을 풀기 시작하면서 머리를 치켜 세웠다. 더욱 신바람이 난 친구는 더 가까이에 가서 겨우 10cm 밖에 되지 않는 나뭇가지로 뱀을 놀리기 시작했다.

한 3분쯤 지났을까. 옆에서 말리다 포기하고 앉아 구경만 하고 있는 우리는 '아야' 하고 고함을 지르는 친구에게 달려갔다. 팔목 근처를 뱀에게 물린 친구는 '이 넘이 무네.' 라고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우리가 어쩔 줄 몰라하는 동안 팔뚝이 점점 부어져 갔다.

상처를 찢어서 독을 빨아내는 응급처치를 조금 알고는 있었지만 어린 우리들에게 무리한 요구였다. 우리는 얼굴이 창백해지는 친구를 업고 정신없이 달려 산을 내려왔다. 동네까지는 약 한시간이 걸리는 길을 단숨에 달렸다. 친구의 아버지가 한의사였기 때문에 친구를 집으로 데려갔다. 이후 친구는 한 달이나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은 뻔 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죄책감을 느꼈다.

유별나게 장난이 심하던 이 친구는 국민학교 졸업을 두 달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교실에 날아 다니던 풍뎅이를 잡아 자기 귀에다 넣은 것이다. 발이 깔끄러운 풍뎅이가 그냥 있을리 없다. 귀 속을 파고 계속 앞으로 가는 풍뎅이는 결국 통증을 견디지 못하는 친구의 비명소리와 함께 귀에서는 성홍색의 피가 줄줄 흘러내리게 했다. 급히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다시는 그 친구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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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님의 댓글

2003.09.29 15:13
  휴~ 정말 대단한 친구였네요...아마도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큰 인물이 되었을것 같아요..에디슨쯤~
어릴적 호기심은 좋은것이지만....지나친 호기심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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