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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승우의 눈물

2003.03.12 15:51 2,514 5 3 0

본문

            슬픔도 모르는 슬픈 눈물

지난 토요일.
이웃과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서 아이들을 떼어놓고 아내와 함께 가까운 식당에 간 적이 있었다.

덕분에 토요일마다 즐겨보던 '야망의 전설'을 시청하지 못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시간이 연속극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는데, 집에 남겨둔 두 아이들은 거실에 나란히 앉아 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본 막내가
"아빠, 형아랑 라면 먹었다~."
하면서 반갑게 달려들었지만 큰 아이는 - 큰 아이라고는 하지만 동생보다 한 살 더 먹었다. - 혼자 앉아 눈물을 닦고 있었다.

'이 놈들 또 싸웠구나.'
생각하면서
"승우야! 왜?"
하고 물었더니
"아빠! ....... 정태가 불쌍해!"
하며 계속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철장에 갇힌 정태가 무지막지하게 매를 맞고 있었다.
극한의 폭력이 슬픔을 낳는다는 말인가?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의 운동회에 참여했다가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어제 보지 못한 '야망의 전설'이라도 보면서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큰 아이가 베개와 낮에 사준 미니카를 들고 내 옆에 나란히 눕는다.
나와 함께 자고 싶을 때는 언제나 지금처럼 말없이 자기 방에서 베개를 들고 와서는 살며시 눕는다.

연속극이 한참 진행 중일 때쯤 문득 아이가 말한다.
"아빠 저 아저씨가 우니까 나도 눈물이 날라한다."
아이가 말하는 아저씨란 극중의 이 정우를 말함이다.
'이 놈 벌써 눈물을 닦고 있구나.'
연속극이 끝날 때까지 아이는 세 번이나 눈물을 흘린다.

"너 왜 우는데?"
내가 물었다.
"저 아저씨가 우니까 나도 자꾸 울고 싶어진다."
눈물을 닦던 아이가 겸연쩍은 듯 싱긋이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하는 말이다.
"왜 울고 싶은데?"
모르는 척 되물었다.
"......."
"그게 슬픔이란 거란다."
"???"
그렇구나!
이 아이는 슬픔이란 단어도 모른 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아니, 슬픔이란 것이 어떤 것인 지도 모르고 울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눈에 눈물이 왜 고여 있는 지 그 이유도 모르고 있었다.

슬픈 극을 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슬픔이란 단어도 모르는 아이가 흘리는 눈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희․노․애․락이 그 발상일까?
아이들처럼
우리가 흘리는 눈물도 가식되지 않은 순수한 눈물일까?
과연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슬픔을 지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걸까?

                  1998.10.12  †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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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5

님의 댓글

2003.03.14 12:33
 
 이런 글은 훌륭한 수필이네
 손원장 앞으로 수필을  써보슈
 모아놨다가 함 책으로 엮으면 조켔구먼

님의 댓글

2003.03.14 12:37
  에구~~ 부끄럽습니다.

님의 댓글

2003.03.14 13:57
  아빠 이게 모야

님의 댓글

2003.03.14 14:45
  에그 아들 넘아..
네가 6살 때 눈물 흘린 이유를 적어 놓은거야. 

님의 댓글

2003.03.14 16:10
  ㅎㅎㅎ

 그새 아들과 얘기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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