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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무엇으로 사는가(10)-야간달리기

2003.09.29 14:56 1,487 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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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시절의 특별한 기억은 별로 없다.
등교시 버스를 타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큰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3년동안의 기억이란 게 학교생활과 특과활동 외는 없는 것 같다.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선생님에 의해 강제적으로 시작했던 습작이 나를 문예반에 가입하게 했고 이 습작은 나중에 고등학교 시절에 적지 않은 활동을 하게 만들었다. 그 밖에 영어회화반, 합창반에서 특기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기억은 없다.

당시 합창반을 맡았던 여선생님의 미모가 아름다왔다는 기억이 난다. 내가 합창반에 들었던 것이 어쩌면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선생님은 미모만큼이나 장난기도 심했던 기억이 난다. 잘 알려진 정치인이면서 재벌의 딸이었던 그 선생님이 시집간다는 날 약간은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음악시간에 짖궂은 아이들이 책상사이를 살살 기어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선생님의 걸상 아래까지 가다 들켜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그런 우리들을 '소리없는 빈 깡통'이라고 불렀다. 빈 깡통은 소리가 요란한 게 당연한데 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깡통이니 무용지물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중학교에 입학 한 지 얼마 후 국민학교 담임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선생님의 아들로부터 돌아가시기 전 나를 찿았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선생님이 평소 내게 하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중학교 때의 기억이란 게 공부하던 기억 밖에 없는 게 서글퍼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7시반에 시작된 수업은 밤 9시 반에야 끝났다. 이 때문에 3학년 때는 반 아이들 몇몇이 학교 근처에 있는 담임선생님의 댁에서 숙식을 하면서 지냈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장난기 어린 아이들의 야간행색이 기억난다.
국어를 가르쳤던 3학년 담임선생님의 댁에 5명이 함께 기거를 했었는데 화장실 가는 거외는 잡담도 못하게 옆에서 지키던 선생님이 자정을 전후로 잠자리에 들면 그 이후는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선생님이 주무시러 간 후에 숨겨두었던 만화책도 나오고 그동안 참았던 말문을 열어 키키덕 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의 장난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후 6개월 동안 우리가 거처하고 지내던 동래 온천장과 부곡동은 우리들로 인해 경찰, 형사, 예비군, 방법대원 모두가 비상사태로 지내게 되어 버린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우리 중 하나가 제안한 야간달리기 때문이었다.
이에 동의한 우리는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살짝 몰래 대문 밖으로 나와서 가까운 이웃의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주인이 나오면 줄행랑을 치는 것이었다. 이런 장난은 날이 갈수록 심도가 더해졌다. 처음에는 대문 여는 소리가 나면 도망다니던 것이 나중에는 문을 여는 순간 머리에 꿀밤을 한 대 주고 도망을 갔다. 그것도 안되면 문을 여는 순간 대문을 발로 밀어찬 후에 달아났다.

이런 일이 시작된 후 2주 후에는 동네에 소문이 퍼져 긴박감이 더해졌다. 우리는 그것을 즐기고 다녔다. 초인종을 누르면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를 덮치는 사람도 있었고 초인종 누르는 순간 파출소로 연락을 해서 기다렸다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뒤에서 잡힌 목덜미를 뿌리치고 달아나는 스릴을 우리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결국 사건은 터져버렸다. 우리가 다니던 서너개의 동네에 비상이 걸려 밤만 되면 골목마다 경찰차와 방범대원이 깔려 있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집을 나선 우리들은 한 집을 골라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했다. 채 1분도 되지 않아 저쪽 맞은편에서 제복을 입은 몇 사람이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잡기 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곧 알아채고 날아가다시피 뛰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상황이 달랐다. 골목길 마다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고, 큰 길에도 약 300m 마다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도망 갈 데가 없던 우리는 할수 없이 하천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하천위를 미끄러져 달아났다. 그러기를 약 20분 후 다섯 중 셋만 남은 우리는 나머지 아이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댁으로 돌아간 우리는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을 걱정하며 아침에 학교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고민하며 뜬 눈으로 보냈다.

다행히 우리들 중 아무도 잡힌 사람은 없었다. 밤에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은 자기 집에서 자고 왔다고 했다. 이후 우리는 야간달리기를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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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

님의 댓글

2003.09.27 17:21
  결국 단단히 혼이 나야 멈추는 것은 누구나 겪는 과정인가 봅니다. 거꾸로 말하면 징계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만약 그런 혼이 나는 과정이 없었다면, 그 친구들 중 일부는 지금도 남의 재산을 부수고 다니는 망나니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것이죠.

대부분의 사람은 작은 부정을 저지른 다음 조마조마하다가 발각되어 처벌을 받은 다음(또는 혼줄이 빠진 다음) 그 생각을 접습니다. 그래서 사회가 요구하는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죠. 보통 사람이 많아야 나도 오늘 밤 편하게 잘 수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보통 사람을 요구하게 되고.

님의 댓글

2003.09.29 11:53
  어린 시절 추억에 이 정도 사고를 안 친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지나서 생각해 보니 참 철부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의 댓글

2003.09.29 14:56
  선생님과 함께 지내면서 저런일이 가능했다니 믿어 지지가 않습니다.
내 어린시절엔 상상도 못할일이건만...
혼난것도 아닌듯 합니다.
경찰아저씨에게 잡혀갔어야 했는데.ㅎㅎㅎ
그랬음 어찌 되었을까요?
궁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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