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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무엇으로 사는가(9)-이사

2003.09.20 23:49 1,625 3 0 0

본문

오늘 아파트를 팔고 말았다. 급하게 매도되는 바람에 점심도 굶고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부디 이 아파트가 영원한 가족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이사했던 재작년의 염원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에상보다 적은 금액으로 급하게 처분하는 바람에 계약서를 작성하는 동안 옆에서 떠들어 대는 아내의 목소리가 조금은 흥분되어 있다. 표현은 못했지만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을 게다. 그런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파트를 팔게된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수입으로는 은행부채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공과금들을 해결할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분수를 모르고 설치고 다녔던 내 잘못이 가족들에게 너무나도 큰 시련을 안겨다 주게 된 것이다. 아파트를 팔아봐야 담보대출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 하지만 급한 불은 또 끌 수가 있을거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

매수인은 한 달 내 집을 비워달라는데 전세금도 없이 어디를 가야할 지도 모르겠다.
처음 울산으로 내려올 때 처럼 사우나에서 자고 먹고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식솔들이 문제다. 2년 가까이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고 돈이 드는 곳에는 발길을 돌렸던 지난 몇 해 동안의 작은 노력이 헛된 것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런 때문에 조금 더 벼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생활고를 잊고 살기 위해 작아지는 목소리와 숫기가 없는 행동들을 감추고 웃으며 살아가려고 노력했었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다시 새로운 생활에 적응될 때까지 의기소침하면서 지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비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밑바닥 생활을 모두 겪었던 지난 날들이 있지 않은가. 처음 울산에 왔을 때를 생각해 보면 앞으로 닥쳐올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가 있을 것이다. 호주머니에 들은 동전 몇 닢을 만지작거리며 컵라면 하나 사 먹고 역전의자에 누워 밤하늘을 보던 지난 날 보다는 훨씬 행복한 지금이지 않는가. 남은 동전 몇 닢으로 무얼 할건가 고민하던 때 보다는 지금이 훨씬 여유로운 건 사실이다.

이런 날이면 폭풍이라도 불었으면 좋겠다. 조용한 진료실에 앉아 잡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비바람 치는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수년 전 몇 십만원 때문에 아이들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팔면서 고치러 보낸다고 거짓말 하던 생각이 난다. 다시 컴퓨터를 사 주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또 뭐라고 해야하나.

일전에 올린 글을 다시 음미해 보면서....

      클릭(click)속에 깃든 부자(父子)의 정(情)

4년 전 아이들이 애지중지 하던 컴퓨터를 팔아버린 적이 있다.
아이들이 컴퓨터에 매달려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가 아니었다. 큰 아이는 계집아이라서 그런지 초등학교 5학년인데도 컴퓨터에는 관심이 없었고, 둘째는 네 살이었는데 우리 집의 컴퓨터는 이놈의 전유물이었다. 막내란 놈도 한 살 위인 제 형 옆에서 주워 들은 게 있어서인지 형이 유치원 간 틈을 타 무엇을 하는지 간간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아내가 막내를 출산한 직후여서 퇴근해 집에 오면 둘째 놈은 내 몫이었다. 때문에 퇴근 후 소주 한 잔 하기도 힘든 상황이고해서 그동안 애지중지하던 컴퓨터에서 부품 몇 가지를 떼어 집에서 사용할 컴퓨터를 하나 조립했다.

컴퓨터를 처음 만지기 시작한 것이 1987년부터인데 그동안 이 컴퓨터 밑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지만 내게는 컴퓨터가 한 대 밖에 없었다. 새로이 장만하기보다는 주로 업그레이드를 한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이 한대의 컴퓨터에 안 달린 게 없었다. 수십 기가바이트의 저장장치를 비롯해서 작곡과 편곡을 위한 미디장비, 동영상편집을 위한 비디오장치, 출사를 위한 스케너와 그래픽장비, 팩스와 인터넷사용을 위한 모뎀 등 수 많은 장비를 한 대의 컴퓨터에 달아 몸살을 앓게 만들고 있었는데 이 중 몇 가지 부품을 떼 내어 별다른 추가비용 없이 컴퓨터 한 대를 더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이 덩치 큰 컴퓨터는 처음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병원에 옮겨놓은 것인데 이젠 더욱 커져 도저히 혼자서는 옮길 수가 없었다. 사실 집에서 병원으로 옮길 때도 이삿짐센터에 연락해 차와 인부를 불러야했다.

막내 아이가 기어다닐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혀 컴퓨터 작업을 하곤 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놀라게 하는 일이 생겼다. 그 날도 퇴근을 해보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둘째 아이가 제 키보다 높은 의자에 올라가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는데 왠지 그 날은 아이의 눈빛이 좀 달라 보였다. 아빠가 집에 들어왔는데도 본 체도 않고 있는 게 좀 수상해서 가보니 글쎄 이 놈이 키보드 자판을 외어 'dir'을 치는가 하면, 당시 한창 유행하던 'mdir'이란 유틸리티를 불러내어 그것으로 디렉토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온갖 프로그램을 실행해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햐~~. 요놈 봐라. 무릎팍에 몇 개월 간 앉아 있더니 별걸 다 배웠네.'
  결국 이 날부터 둘째 놈은 이 복잡하고 머리 아픈 컴퓨터 계에 입문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선 고장을 방지하기 위해 컴퓨터본체와 모니터를 켜고 끄는 순서를 비롯해 간단한 프로그램의 실행방법 등 몇 수를 전수해 주었다. 당시 둘째 아이의 나이가 19개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이 때부터 집에 있는 컴퓨터는 둘째 아이 차지였는데 약 2년 간 혼자서 제법 주물럭거리며 사용하던 컴퓨터를 IMF로 찌그러진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려고 팔아버렸으니 이 놈 심정이 얼마나 아팠을까. 지금도 컴퓨터를 팔던 날의 모습이 생생하다. 통신상에 올려놓은 컴퓨터를 사겠다는 사람이 집으로 와서 이상유무를 확인해 보고는 차에다 컴퓨터를 실을 때 둘째 아이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면서 내게 물었다.
  "아빠, 저 아저씨 왜 우리 컴퓨터 가져가?"
차마 판다는 말을 못해 거짓말을 했다.
  "으응, 고치러 간다."
  "왜 아빠가 안 고쳐?"
  "......."
  "왜 아저씨가 우리 컴퓨터를 고쳐? 아빠 잘 고치잖아."
  "고장이 많이 났거던."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치, 아까는 잘 됐는데..."
내가 이 때 한 말이 아이에게 한 첫 거짓말이었다. 아이는 물건을 싣는 아저씨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을 정도로 물어댄다.
  "아저씨, 언제 고쳐오는데요?"
  "아저씨, 집이 어딘데요?"
둘째 아이는 불안한 듯 이렇다 저렇다 대답하기 곤란해하는 그 사람을 따라 다니며 계속 확답을 바라는 질문을 해댄다.
  "아저씨, 빨리 고쳐야돼요."
  "아저씨, 게임 새로 깔아야 되요??"
아이의 태도를 보니 인수하러 온 사람을 도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았지만 입안까지 올라 온 말을 그냥 꿀꺽 삼키고 말았다. 아이는 차가 출발 한 후에도 한참동안이나 차가 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 니 고개를 있는데로 떨구고는 방안에 들어가더니 '와 앙~~'하고 있는 목청이 터져라 울기 시작했다.

그 날 아이는 저녁도 안 먹고 지쳐서 잠들  때까지 울었다. 컴퓨터를 고치러 보낸 것이 아니고 팔아버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로 아이는 간간이 컴퓨터가 있는 이웃형들 집에 가서 놀다 오곤 했는데 집에 돌아올 때마다 내게 분풀이를 했다. 이제 다섯 살짜리 아이가 자기 또래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친구 가 거의 없으니 이웃형들 집에 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뒤에 서서 형들이 게임하는 것을 구 경하다 자기도 한 번 시켜달라고 사정해도 형들이 바로 시켜줄 리는 만무하다. 몇 시간을 기다리다 형이 자리를 비켜주어 겨우 몇 분간 만져보게 하는 것이 감질은 나지만 그래도 그런 날은 감지덕지한 날이다. 대개는 키보드를 건드려보지도 못하고 아픈 다리만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리 아파 죽겠다고 투정을 하지 않나 어쩌다 천 원짜리 하나 손에 쥐면 이거 몇 개 있어야 컴퓨터를 살 수 있는 지 물어보지를 않나 하여간 애물단지인 컴퓨터를 팔아버린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구구절절 했다.

좀처럼 형편이 풀리지 않아 아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컴퓨터를 사 주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봄에 아이 생일선물로 컴퓨터를 한 대 조립했다. 현찰이 아닌 카드할부였지만 아이의 등살에 못 이겨 지난 겨울에 약속을 해버렸던 것이다. 컴퓨터가 집에 설치되던 날 아이들은 마루가 내려앉을 정도로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했다. 2 년 간이나 컴퓨터를 만지지 않았지만 곧 잘했다. 새 디렉토리 만드는 것, 프로그램 까는 것, 단축아이콘 만드는 것, 시디로 프로그램 설치 하는 것, 플로피디스켓 만들고 파일 카피하는 것, 인터넷에 연결해 필요한 내용을  아 다운 받는 것, 바탕화면 새로 바꾸는 것, 윈도우의 해상도 바꾸는 것, 필요한 파일을 프린터해 내는 것 등 과거에 가르쳐 준 것을 왠만한 건 다 해내었다.

지금은 낮에 집에 있는 아이들과 간간이 FTP서버를 이용한 파일 교환을 하는데 ADSL을 사용하는지라 IP가 유동적이라서 언제나 전화로 물어야 하는데 이 IP주소를 또박또박 읽어주는 아이가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작년에는 컴퓨터를 잘 하려면 영어를 알아야된다고 영어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에 기가 차기도 했지만 지금은 영어학원에서 배운 단어 몇 개로 화면에 나오는 말을 해석하려는 것을 보고는 비록 할부가 끝나지 않은 컴퓨터지만 잘 사주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제 동생이랑 둘이 앉아 2인용 게임을 하다 싸우고 난리법석을 떨다 엄마한테 혼들이 나지만 그래도 엄마는 이게 사람 사는 행복이란다.

오늘도 아들놈에게서 병원으로 전화가 왔다.
  "아빠. 친구에게 시디를 빌어왔는데 게임 깔라니까 direct X 깔려있는데 또 깔라고 '덮어씌울까요'하고 물어보는데 '아니오'에 클릭하까?"

          2000년 겨울에. †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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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

님의 댓글

2003.09.20 12:53
  남의 일같지 않구먼요. 아마 지금처럼 나오는 의사수가 많으면 몇년안에 우리모두가 당할 일이고  지금도 당하고 있습니다.

손원장의 정신적 용기 대단합니다.

매일 보면서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고 용기를 잃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님의 댓글

2003.09.20 16:07
  몸에 배어버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제 이사간다고 말했더니 아이들이 울고불고 난리더군요.
그 참..아이들이 우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정든 곳을 떠나기 싫은건지...

님의 댓글

2003.09.20 23:49
  눈물이 날라 하네요.. 홍인님 글을 보면은.. 그래도 아이들과 부인과의 다정한 모습들이 그려집니다.. 항상 용기 있고 멋진 아빠로..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런 훌륭한 남편으로 오래오래 남으시길..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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