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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무엇으로 사는가(7)-형

2003.09.09 10:55 1,683 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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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민학교를 옮길 때 나보다 다섯 살 위인 형님은 다니던 학교에 그대로 남았다. 아마 졸업반이 가까와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다지 화목하지 못하던 집안에 또 다른 화근을 불러오게 된 사건이 터졌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형님이 철봉에서 떨어지면서 무릎을 다친 것이다. 당시에는 그것이 집안의 커다란 문제가 된다는 것을 전혀 알지도 못했지만 이후로 10년이 넘도록 집안은 온통 형님 건강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어야 했다. 형님이 중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부터 내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아침 등교시간이면 언제나 집앞에는 택시가 와서 대기 중이었고, 나는 형님 가방을 대신 든 채 함께 형님 학교까지 갔다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차를 돌려 내가 다니던 학교로 돌아왔다. 물론 매일 내가 따라 나선 건 아니지만 형님의 건강상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어머니는 절룩거리는 형님을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찿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다니는 병원마다 이구동성으로 '다리를 절단해야 합니다.' 이 한마디 였다. 장남의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는 수긍을 했지만 어머니에게는 받아 들여지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10년이 흘렀다.

형님은 등교하는 날 보다 병원에 있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학업이 제대로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고등학교에는 진학을 했다. 아마도 어머니의 정성으로 가능했으리라 여긴다. 집에만 누워있던 형님은 영어수학책 보다는 노트에 그림이나 글을 적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그림을 잘 그렸던 게 기억난다.

비교적 넉넉하던 집안 살림이 형님의 건강문제로 점점 힘들어졌던 것 같다. 형님의 건강 문제는 내게 여러가지 영향을 미쳤는데 그 중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장남이 못 다한 공부를 내게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형님도 그런 것을 알았던지 국민학교 졸업식 후 중학교 입학 때까지 부지런히 놀고 있던 내게 중학교 들어가서 영어를 모르면 선생님에게 혼난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그 덕분에 나는 중학교 입학 전에 당시 학교 교과과정으로 사용되던 영어교과서 두 권을 독파한 후에 입학을 할 수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형님은 전자학원에 등록을 하여 전기기사 자격증을 획득해서 전기상을 차렸고, 스무 다섯살이 되던 해에 기적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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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님의 댓글

2003.09.09 10:55
  너무 너무 다행이네요.. 좋으셨겠어요.. 형님이 건강을 다시 찾아서.. 어릴적 부터 남달리 공부를 많이 했으므로 오늘같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요.. 어머님이 많이 고생하셨겠네요.. 형님 돌보고 동생들 돌보느라...
좋은날에 가족이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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