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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무엇으로 사는가(5)-어린시절의 추억

2003.08.02 16:44 1,415 0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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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입학 전까지는 지내온 기억이 별로 없지만 그 이후의 어린 시절은 지금도 기억나는 일들이 많다.
부모님들은 내가 태어난 직후 고향을 떠나오면서 자리잡았던 아래 동네에서 길이 가파른 언덕 위 동네로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집공사가 완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짐을 옮긴 모양이었다.
그 때가 사라호 태풍이 불었던 가을이었다. 추석아침에 제사 지낼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강한 바람에 임시로 지붕에 덮어두었던 양철판이 산동네까지 날아가버려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그 무렵에는 아버지의 직장이 안정되고 어머니는 집에서 장갑을 짜서 납품을 했다. 그런대로 살림이 안정되기 시작했지만 또 다른 집안의 걱정거리가 생겨났다. 바깥으로 돌아다니던 아버지에게 여자가 생긴 것이었다. 이 사건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5남매가 자라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사건이다.
세상물정을 몰랐던 어머니가 이 사건으로 인해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그 원망을 풀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어번 집에 들어오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굴이 마주치면 언성을 높혔다. 밤마다 집안에는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고, 어린 남매들은 겁에 질려 방 구석을 찿아 숨소리를 죽여가며 눈치만 보곤 하였다.
때로 상황이 좋지 못한 경우에는 겁에 질린 동생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꽁꽁 얼어붙은 손과발을 동동 구르며 밤을 새워야 했던 때도 있었고, 살림이 부서지는 경우에는 깊은 잠이 든 이웃 집에 뛰어 들어가 싸움을 말려 달라고 애원했던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부모님의 싸움은 대체로 날이 새도록 진행되곤 했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날에도 그랬다.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가는 국민학교 입학식에 혼자 가야만 했다. 이런 일들은 고학년이 된 몇 년 후에도 집안이 시끄러운 날이면 도시락 대신 어머니가 챙겨주는 돈 몇 푼으로 빵을 사서 점심을 때워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비롯한 어린 동생들에 대한 배려도 없이 허구헌날 싸웠던 부모님들에게 서운한 감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싸움이 빨리 끝나 잠이라도 잘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고학년이 되면서 부터 경제적인 여유는 있었던 것 같다. 동네에서 제일 먼저 전축을 들였고, TV도 제일 먼저 구입했다. 4학년이 되던 생일에는 선물로 카메라를 받은 것만으로 짐작할 수가 있다.
낮에는 노래를 듣기 위해 동네 어른들이 자주 모였고, 초저녁이 되면 넓은 마당에는 마루위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이 수십명씩 모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사람들이 자주 찿은 노래가 가수 이미자가 주로 불렀던 토롯도풍의 가요와 베벵이굿 등의 판소리였고, KBS일일드라마인 여로가 방영되는 시간이면 으례 사람들이 저녁도 먹기 전부터 집앞에서 어슬렁거리곤 했다. 그 당시 우리집에는 별명이 붙었다. 바로 전축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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