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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무엇으로 사는가(3)...막내 제사

2003.07.14 12:06 1,570 0 1 0

본문

어제는 막내 동생의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아내가 정성껏 만든 제사음식을 차에 싣고 부산으로 갔다.
어머니가 몸져 누워 계시기 때문에 제사 음식은 언제나 아내 몫이다.

막내동생은 만 19세에 목숨을 잃었다.
수영을 유달리 싫어했던 놈인데 익사를 했다.

나는 막내를 참 좋아했다.
나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막내를 좋아했다.
막내는 친근감이 많고, 인내할 줄 알고, 사회성이 많은 놈이었다.
기울어진 가운 때문에 학교 다닐 때도 집에서는 제대로 해 준 게 없었다.
중학교 입학 때 입은 교복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입고 다녀도 불평 한마디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때로는 차비가 없어 두 시간도 더 걸리는 퇴교길을 걸어서 오면서도 집에 와서는 불평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 혹시 누나들이 부모님들에게 잘못하는 것이라도 눈에 띄면 그 자리에서 나무랄 줄 아는 아이였다.

막내는 나와 아홉살 차이가 난다.
지금 살아있다면 37살인 셈이니까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15년이 흘렀다.

막내는 그림그리기를 참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대학진학도 미대를 택했다. 지금도 집에는 막내가 그린 그림 몇 장이 남아 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막내는 왠만하면 어머님께 돈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어쩌다 꼭 필요하면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곤 했다.
나라고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중보건의로 근무를 하면서 야간당직을 하고 있던 터라  그다지 많지 않은 동생 용돈은 챙겨줄 수가 있었다.

내가 기장보건지소에 근무하고 있던 어느 날 불행은 다가왔다.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막내는 나를 흔들어 깨우며 돈을 좀 달라고 했다.
여름방학이라고 집에 와 있던 막내가 친구들과 여름캠프를 간다는 것이다.
수영을 할 줄 몰라 물 근처에는 잘 가지도 않던 막내는 친구들 등살에 못이겨 함께 가기로 했던 모양이다.
나는 잠결에 호주머니에서 필요한 만큼 내어가라는 말만 하고 계속 잠을 청했다.

그런데 내가 출근한 두어시간 후에 밀양경찰서에서 나를 찿는 전화가 왔다.
동생이 물에 빠졌는데 한시간이 지난 지금도 찿지를 못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청천벼락 같은 말이었다.
집에 연락을 해 보니 벌써 연락을 받고 출발한 후였다.
나도 급히 택시를 타고 밀양 유천으로 향했다.

이 날 내가 부모님의 고향인 밀양에서 본 일들과 겪은 것들은  지금도 뼈에 사무치게 슬픈 일들이었다.
온갖 생각에 묻혀 유천에 도착해 보니 막내의 시신이 강변에 누워있었다.
아직은 따뜻한 체온이 느껴져 도저히 숨을 거두었다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여동생들과 어머니는 정신없이 울고 있었고, 수상경찰 말로는 사체검안을 마쳤다고 한다.
막내 친구들이 자초지종을 알려줬다.
수영을 못해 강변에서 텐트를 지키고 있던 막내가 처량하게 보여 친구들이 강제로 물 속으로 데려가 장난을 치던 중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친구들은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 하였다. 후에 이 친구들이 1년 남짓 집에 와서 어머니께 막내 노릇을 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얼굴도 모두 잊혀졌지만.
눈물바다로 얼룩진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사체운구를 위해 사체검안 의사를 찿아갔다.

검안의가 대기 중인 환자를 보는 동안 이리저리 둘러보다 문득 검안의사가 대학선배임을 말해주는 거울을 발견했다. 슬픈 마음이지만 먼 곳에서는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순서를 기다리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서는 막내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저도 의사라는 둥 학교 후배라는 둥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화색이 바뀌면서 밖에 가서 계산하고 가라고 한다.
얼떨결에 바깥에 나와 계산을 마치고 아무래도 석연찮아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 왜 갑자기 말을 막았냐고 물어봤다. 그 의사의 답변은 지금도 내 가슴을 도려내는 말이었다.
내가 의사며 후배라고 말한 것은 결국 검안비를 어떻게 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세상의 모진 면을 느끼면 막내가 누워있는 강변으로 왔다.
장의차를 불러 거의 실신상태에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달래며 부산으로 왔다.
동생은 객사를 한 터라 죽어서도 집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장의차는 집 앞에 잠시 머뭇거리다 화장터로 향했다.

막내의 시신을 태운 재는 바다가 보이는 바위 위에서 밤바람을 타고 뿌려졌다.
재를 뿌리는 순간 막내가 나를 보며 하던 말이 생각나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도 형님처럼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면서 남을 위해 인생을 살아갈께요. 형님을 보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작년에 막내 결혼식을 올렸다.
약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저승에서도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마음에 어머니께서 결정한 일이다.
혼전에 세상을 떠난 아가씨와 중매결혼을 초라하게 시켰지만 가족들이 모두 모여 축하를 했다.
올해는 얼굴도 모르는 제수씨 제삿상도 함께 차렸다.
막내가 좋아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저승에서라도 둘이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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