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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무엇으로 사는가(1)-출생

2003.06.23 11:19 1,701 0 1 0

본문

나는 나의 출생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물론 구태연하게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태어나기 전에 또 다른 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갓 태어난 형을 업은 채 건널목에 서 있다가 기차 기적소리에 놀란 형이 우는 줄도 모르고 한참이나 업고 다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이미 숨을 쉬지 않더라는 얘기를 어머니는 그리 슬퍼하는 기색도 없이 들려주곤 했었다. 형은 호적에 이름도 올려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전쟁이 막 끝났던 그 시절에는 전염병이나 기아 때문에 신생아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출생일을 넘겨 출생신고를 하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일찍 세상을 떠난 형을 대신해 태어난 인생인지도 모른다.

나는 태어난 곳에서 30년을 자랐다. 같은 동네의 약간 높은 곳으로 이사한 후에는 태어난 곳을 30년동안 떠난 적이 없었다. 부모님 고향은 밀양이다. 어릴 때 고향을 찿은 적은 많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은 기억에 없고 할머니 모습만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이다. 장남이 아니면 학교도 보내지 않았다는 고집 센 할아버지가 있는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학교에 가고 싶어 학교 근처에서 놀다가 매를 맞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결혼식을 올린 부모님이 빈손으로 고향을 떠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 어머니는 전쟁 중에 병원 문턱에 가보지도 못하고 형을 낳았고 아버지는 징병을 피해 여기저기 숨어다녔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집에 몰래 올 때면 형사들을 피해 조그만 농 속에 몸을 숨긴 채 밤을 지낸 적이 여러번 있었다. 물론 그런 생활은 내가 태어난 후에도 오랜동안 지속되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집안 살림은 어머니가 맡아야 했고 끼니문제도 어머니가 해결해야 할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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