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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나는 왜 '단'이란 말을 못하는걸까

2005.12.21 22:05 1,347 1 0 0

본문

최근 몇개월 동안 매달 나를 찾아와서 공부를 시켜주고 가는 환자가 있다.
수년 전 신장이식을 했다는 60대 중반의 이 남자환자는 의료급여1종으로  달이 바뀌면 어김없이 찾아와 나를 일깨워주고 간다.

며칠 전에도 진료실을 찾아와서는 느닷없이 바지를 쑥 내리면서 피부가 왜 이렀냐고 묻는다.
가려워서 잠자면서 피가 나도록 긁었다면서 이식부작용이 아니냐고 따지듯이 묻는다.
좌측 허벅지에 긁은 자국이 보이고 이차감염이 되어 피부가 벌겋게 부어 봉와직염이 되어 있었다.
아직 농양은 형성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피부가 단단한게 농양이 생길 가능성이 다분하다.

"긁어서 상처난 피부에 균이 들어가서 그러네요."
"잘못 고름이 차면 칼로 찢어서 고름을 들어내야 할지도 몰라요."

굳이 봉와직염이라고 하면 이해를 못 할까봐 쉬운 말로 표현하느라고 이렇게 말했다.

"이거, 신장이식 후의 부작용 맞죠?"
"내일이라도 부산 xx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겠다."

언제나처럼 이식 후의 부작용을 강조했다.

"며칠 치료하면서 경과 좀 봅시다. 빠지지 말고 매일 들러서 치료 받아요."

간단한 처치를 하고 항생제 주사를 놔주면서 처방전을 줬다.
이틀 연속 잘 오지 않던 이 환자가 왠일인지 다음 날 다시 병원에 들렀다.

"하나도 안 낫고 더 아프다. 이거 틀림없이 이식부작용 맞네."

환부를 보니 하루 사이지만 염증상태는 약간 누그러진 상태다.
삼출액이 나오던 자리도 아물러가고 이 정도면 치료가 며칠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 날 이 환자는 오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다른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으려니 생각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3일이 지난 후 다시 찾아왔다.
감기증상이 있어서 치료를 하러 왔다고 한다.
허벅지는 다 나았다고 말했다.

변두리 유명한 약국에 가서 보이니까 단이라고 금방 알더라면서 약3일분을 지어주더란다.
약값이 45,000원이라고 말했다.
그걸 먹으니 금방 낫더란다.
물론 아물러가는 상처에 항생제와 소염제를 계속 먹었을테니 나았겠지 생각했다.

"한번 볼래요?"

하면서 허리띠를 끌렀다.
상처는 가피가 형성되어 있고 아직 염증은 남아 있었지만 많이 나아있었다.

"병원에서 계속 치료하면 돈도 안 들텐데 왜 돈 들여가면서 따로 약을 사 먹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봉와직염은 다 나았다고 치료할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기치료를 위한 처방을 했다.
심하지 않은 감기증상이라 약을 이틀분 처방했다.
자신이 치료한 병이 단이라는 사실과 다 나았다는걸 알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라 분명 내일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나에게 다시 한번 가르침을 주고 갔다.

'나는 왜 단이라고 말하지 못하는걸까?'

잠을 청하기 위해 잠자리에 누워서도 그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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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님의 댓글

2005.12.21 22:05
  홍인님이 젤 잘 알겠지요..

원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믿잖아요..
처방해서 빨리 나으면 능력있는 의사샘 되는.....^^*
환자를 생각하고 마음을 써 주는 홍인님 마음을 알아줘야 하는데..
넘 마음이 곧고 착해도 돈 못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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