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접속자 1
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해리포터와 아빠

2003.03.12 15:23 1,962 0 12 0

본문

                                  해리포터와 아빠

                                                 
  얼마 전 아이들 엄마가 내게 특별한 요구를 해왔다. 롯데씨네마 영화 관람권을 인터넷으로 예매해 달라는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아이들이 직접 인터넷으로 예매하던지 아니면 영화관에 직접 가서 예매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표를 구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부탁받은 그 날에는 상영 2주 전이라 예매일정에 원하는 영화가 들어있지 않아 다음 주 쯤에 예매하기로 하고 잊고 있었는데 영화상영 3일 전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다시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해 보았더니 모두 매진상태였다. 아이들이 무척 서운해 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놈들의 원망스런 눈초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인터넷 사이트를 이리저리 찿아 헤매다 토요일 오후 5시 반 표가 석장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는 서둘러 예매를 했다.

  인터넷으로 예매를 한 경우에는 예매권을 직접 프린터해서 상영 당일 날 영화관에 들고 가서 관람권과 교환해야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두 동생과 함께 영화 관람을 하기로 한 큰 딸이 학원에서 늦게 귀가한다고 전화가 왔기 때문이었다. 집사람이 심한 감기몸살을 앓고 있는 터라 큰 딸의 관람권이 내게로 향하게 된 것이다.
  결국 5시 퇴근 후 곧바로 집에 가서 아이들을 차에 태워 영화관으로 갔다. 연말에다 영화관이 번화가에 위치한 지라 겨우 상영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가 있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집 앞에 영화관이 생긴 지 1년 가까이 되었지만 영화관 곁에 가 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동안 아이들은 상영시간에 늦겠다며 나를 두고 줄행랑을 치듯이 뛰어 가버렸다. 늘 바쁜 핑계를 대며 가족들에게 소홀했던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관을 처음 온 지라 상영관 출입구가 어딘 지도 몰랐고 어떤 절차를 밟아 들어가야 하는 지도 알 리가 만무했다. 상영시간은 이미 지났는데 나는 상영관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가까스로 상영관 입구를 찾아가 보니 아이들이 안 보인다. ‘허~ 이놈들 벌써 들어갔나? 예매권에 3명 모두 기재가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바깥에서 상영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하지만 그런 생각이 나 혼자만의 말도 되지 않는 상상이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복도 한 쪽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훌쩍거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아이들 곁에 가서 왜 울고 있냐고 물었더니 상영시간이 지나 들어가지 못해서 운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아이들의 눈초리가 예사가 아니다. 분명 나를 원망하는 눈빛이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괜찮다고 말하면서 달래보았지만 커다란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그칠 줄 모른다. 작은 아이는 소리를 내면서까지 울음보를 터뜨리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어 버렸다. 그 순간에는 얼마나 무안하던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어쨌건 예매권을 관람권으로 교환해야 했기 때문에 매표소를 가보니 이건 또 뭐냐. 표를 구입하려는 관람객이 무려 4줄로 서 있지를 않나 것도 한 줄에 최소 3~40명씩은 될 것 같았다. 줄을 서서 순서대로 기다리다 보면 영화상영 반은 지날 것 같다. 순간 아이들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이 사그리 없어지고 갑자기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자연 원망이 아이들 엄마에게로 돌아간다. ‘왜 하필 나보고 얘들을 데려가라고 해서 이 고생을 시키지?’ 하는 맘이 꿀떡같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어떻게 하던지 아이들 영화 관람은 시켜야하니 방법을 찿아야만 했다. 아이들에게 아빠로서의 체면을 살리는 게 우선 급선무였다. 발걸음에 힘을 주고 무작정 매표소로 가서 예매표를 보이며 영화상영이 시작시간이 지났는데 이것부터 해결해 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했더니 바로 관람권을 주며 빨리 들어가라고 했다. 이런 너무 쉽게 끝나 버릴 일로 혼자 고민을 너무 많이 한 것이다.

  세 시간 가까이나 되는 긴 상영시간이 지나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 어두워 졌고 저녁시간도 훨씬 지났다. 집에 가도 아파 누워있는 아이들 엄마에게 저녁 얻어먹기는 틀렸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을 찾았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평소 좋아하는 돈까스를 먹는 동안에도 시무룩한 표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놓쳐버린 영화 앞부분에 대한 미련 때문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내게는 말 한마디 건내지 않는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아이들 표정을 본 엄마가 뭐라고 묻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울음보 터뜨리는 소리가 또 들린다. 분명 얘들 엄마가 또 내게 그럴 것이다. “어찌 아이들만 데려나가면 울려서 데려와요?” 얼른 목욕탕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너무 힘들고 아빠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뭉개버린 20년만의 영화관람이었다.

            2002년 12월 15일 저녁
12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30 건 - 1 페이지
제목
1,802 68 0 2005.08.20
1,647 51 0 2004.05.20
1,805 51 0 2004.06.28
1,632 48 0 2004.05.29
1,833 46 0 2004.07.14
2,483 44 0 2004.05.13
1,656 44 0 2004.05.19
1,773 43 0 2004.07.12
1,790 42 0 2004.06.07
1,576 33 0 2004.03.05
1,636 25 0 2004.05.10
1,655 20 0 2004.05.08
1,595 18 0 2004.02.25
1,674 16 0 2004.03.07
1,963 12 0 200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