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접속자 1
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의사보다 똑똑한 환자

2005.08.20 08:04 1,801 3 68 0

본문

요즘은 의료행위도 순수한 서비스업종에 포함시키는 세상이다.
이러다보니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인 신뢰와 믿음, 그리고 협조를 기대하기가 힘든 세상이다. 환자들은 의사 또는 병원을 골라 다니며 자기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해 주는 의사나 병원을 원한다. 병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은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다.

오늘 응급실에서 정말 똑똑한 환자 보호자를 접했다.
5세된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퐁퐁 같은 걸 타다 넘어지면서 좌측 족관절 염좌를 입은 아이였다. 관절부위에 경도의 국소부종과 동통을 호소하는지라 일단 관절부위의 방사선촬영을 권하고 사진 찍는데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이 환자보호자인 아이의 아버지는 촬용 후에 곧 바로 치료를 담당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진 잘 나왔나요?"
"잘 보입니까?"

"녜. 골절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진이 잘 보인다고요?"
"아니 아픈 쪽은 저 반대편인데 사진을 반대로 찍어놓고 잘 보인다고요?"

보호자의 명백한 시비쪼의 질문이었다.
방사선실에서 그리드(grid)를 아픈 쪽에 대고 아픈 쪽 반대편에 방사선을 쪼이는 것이 못마땅해서 왜 사진을 반대로 찍느냐고 따지기 시작했는데도 그대로 진행되어 그 공세가 나에게까지 온 듯 했다.

"원래 반대편에서 찍어야 아픈 쪽이 잘 나옵니다."
"그리고, 뼈의 골절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쪽저쪽 상관없이 다 가능합니다."

"힘줄은(인대) 이상없나요?"

"인대는 사진상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니, 이런 사진 여러번 찍어봤는데 사진 이렇게 찍는 거 처음 보네."
"그냥 갈라요."

결국 아이 아버지는 다리를 절룩거리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총총 걸음으로 나가버렸다.
나가는 환자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어쨌던 똑똑한 아빠 때문에 아이는 귀찮은 부목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오늘 환자들은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대개가 비협조적이다.
초저녁에는 급성충수염(맹장염)이 확실한 아이를 몸에 칼을 대기 싫다고 그냥 데리고 가 버린 부모도 있었다.

세월이 갈수록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인술은 방어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전통진료를 고집하는 나는 갈수록 입지가 어려워지리라는 생각이다.
68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3

님의 댓글

2004.06.07 12:35
  정확하게 표현하면 "똑똑한"이 아니라 "잘난척하는"이 맞는 것 아닌가요?

음, 그라고, 선상님이 잘못하신 거요. 왜냐하면 충분한 사전 설명을 안해주셨거든. ㅎㅎㅎㅎ

님의 댓글

2004.06.08 23:52
  모자란 넘한테는 답이 간단해야합니다.
1.뭘 봐요?
2.인대는 이상있습니다.
3.알았어.

님의 댓글

2005.08.20 08:04
  ㅎㅎㅎㅎㅎ
제가 당직 설 때 생각납니다....저는 환자 및 보호자 대처능력이 미숙한데다가 나이까지 어려서 보호자들에게 많이 당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아이가 좀 불쌍합니다.-.-
전체 530 건 - 1 페이지
제목
1,802 68 0 2005.08.20
1,647 51 0 2004.05.20
1,805 51 0 2004.06.28
1,632 48 0 2004.05.29
1,832 46 0 2004.07.14
2,483 44 0 2004.05.13
1,656 44 0 2004.05.19
1,773 43 0 2004.07.12
1,789 42 0 2004.06.07
1,576 33 0 2004.03.05
1,635 25 0 2004.05.10
1,655 20 0 2004.05.08
1,595 18 0 2004.02.25
1,674 16 0 2004.03.07
1,962 12 0 200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