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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홍인의세상사는이야기

야간당직 첫날

2004.05.13 00:04 2,483 8 44 0

본문

예전에는 내가 당직 서는 날이면 비상이 걸렸었다.
다른 날은 밤새 잠만 자다 가거나 놀다가도 내가 당직을 서는 날이면 언제나 환자가 몰렸었다.
환자도 환자 나름이지만 내가 당직서는 날은 위급한 환자가 유별나게 많았다.
그래서 야간 당직자들이 내가 당직 서는 날은 서로 빠질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과거에는 나도 상당히 잽싼 편이었던 모양이다. 자살 목적으로 농약을 먹고 온 환자나 몇 초 상관에 생사의 기로에서 왔다갔다 하는 환자들을 살려놓는 재주는 있었던 것 같다.
당직을 하는 날이 지날수록 과장들도 내가 당직서는 날이면 마음껏 밤을 보냈고 당직자들도 내가 당직하는 날이면 콜을 하는 일이 거의 없어지기 시작했다.
결국은 당직비까지 올려주는 상황까지 진전이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징크스는 그대로 인 모양이다.
근무 첫 날부터 M.I.(심근경색증)환자가 찿아들었다. 조용하던 응급실이 갑자기 북새통을 이룬다.
같이 일하는 간호원이 상당히 노련하다. 덕분에 EKG 찍고 O2 꼿고, EKG 모니터링하면서 데미롤 정주하는 사이 엠블런스에 환자를 실어 이송했다.
이송병원에 도착할 즈음 환자의 호흡상태가 최악이었던 것 같다. 호흡수가 10회 이하였고 동공이 확장된 상태였단다. 다행히 지금은 상태가 양호하단다.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내 눈치를 힐끗 보면서 한 마디 던진다.

'잘 하시네요.'

사실은 나도 첫 근무인지라 내 정신이 아니다.
거기다 오늘따라 mental 이 drowsy한 환자가 왜 이리 많을까.
옛날 징크스가 되살아 날지 첫날만 이러다 잠잠해질지는 앞으로 겪어봐야 하겠지만 그래도 환자보는 실감은 좀 난다.

1시가 지나면서 환자는 뜸해졌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여기 도착한 후 맘이 편치않는 일도 생겨서 더 그런 모양이다.
아직 첫날 근무시간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잠시 누워 있다 당직실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이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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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8

님의 댓글

2004.05.11 08:23
  밤에 잠시 들어왔을 때 혼자 계시더니 이거 치고 계셨군요. 1시 36분이라..

님의 댓글

2004.05.11 09:19
  아이구 수고하셧내
그런데 뭐가 맘이 편치 않는일인지? 궁그미

님의 댓글

2004.05.11 11:21
  나이먹어서 고생이 많수!
 그래도 죽어가는 사람 살렸으니 보람이 있네유!

님의 댓글

2004.05.11 11:43
  형님 밤새 수고 많이 하셨어요.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뵐께요.
형님 일하시는동안 저는 완우샘이랑 죽어라 마시고 지금 거의 죽어가고 있읍니다. 죄송해요...........

님의 댓글

2004.05.11 15:07
  정말로 시작 하신게군요...
나태라는  허상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늘 건강하고 즐거우십시오

님의 댓글

2004.05.12 13:41
  보령의원 말고 다른 종합병원 다녀요??

님의 댓글

2004.05.13 00:04
  야간당직?....에고오~~

님의 댓글

2013.10.18 11:49
돌아가신 고박사님 글이 있네 에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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